24시간 방송이 일상화된 지금, 밤에 TV가 안 나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TV는 자정 무렵 정규 방송을 마쳤다. 한국에서도 한때 밤은 물론, 오후 시간에도 방송을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 방송도 밤은 물론 오후 시간대도 TV 방송을 하지 않던 적도 있었다.
1995년에 케이블 TV가 시작되면서 뉴스를 비롯한 일부 채널이 종일 방송을 시작하였고, 지상파 TV는 2012년 10월에야 KBS1TV가 24시간 방송을 시작하면서 종일 방송 체제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자정이 되면 방송국들은 애국가를 틀고 태극기나 국가 상징 이미지를 내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이후 화면은 어두워지거나 삐~하는 톤과 함께 컬러 막대나 기하학적 패턴이 등장하는 테스트 카드(Test Card)를 내보냈다.
이 기하학적 패턴은 잠 못 이루던 이들의 밤을 지배하던 풍경이자, 기술과 문화가 교차하는 복합적 상징이었다.
📺 테스트 카드란 무엇인가?
테스트 카드는 단순한 장식용 이미지가 아니라 방송 엔지니어들과 시청자 모두를 위한 화면 조정 도구였다. 아날로그 방송 시절 TV 송출 신호와 수신 장비의 세밀한 조정이 필요했고, 화면의 색상, 밝기, 수평 수직 비율, 해상도, 고 스팅, 플리커 현상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각적 기준점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TV를 수신하는 가정에서는 토끼 귀(Antenna Rabbit Ears)로 불리기도 했던 실내 수신 안테나를 손으로 돌리거나 외부에 설치된 안테나를 돌려가며 가장 선명한 화면을 맞추어야 했다. 이때 TV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테스트 카드는 조정 완료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1950년대의 TV 방송 환경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방송 선도국인 미국도 당시에는 ABC, CBS, NBC와 지금은 사라진 DuMont까지 주요 네트워크 4곳의 한 주간의 편성시간은 총 90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정규 방송 외 시간에는 스튜디오 카메라 앞에 설치한 이젤에 테스트 카드를 고정시켜 송출하면서 TV 엔지니어는 이를 기준으로 방송 장비를 점검했다. 시청자들은 이 화면을 보며 수신기를 미세하게 조정하곤 했다.
📜 테스트 카드의 기원 : 1930년대 BBC
1934년에 영국 BBC가 처음으로 사용을 시작한 테스트 카드는 종이에 직선과 원을 그린 단순한 도안의 흑백 카드였다. 이를 통해 카메라 왜곡, 정렬 오류, 신호 불균형 등을 교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업 방송이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테스트 카드가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 컬러 방송의 시작과 SMPTE 컬러 바
1960년대에 컬러 방송이 도입되자, 테스트 패턴 역시 진화했다.
미국 영화 텔레비전 기술자 협회(SMPTE |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는 방송 기술 표준을 수립하고 컬러 바(Color Bars)라고 불리는 색상 신호 패턴을 개발했다.
이 패턴은 색조(Hue), 채도(Saturation), 밝기(Luminance), 대비(Contrast)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SMPTE 외에도 EBU, TV 메이커였던 RCA, Philips 등도 각자의 필요에 맞는 테스트패턴을 개발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방송국의 🧑🔧얼굴이 된 테스트 카드
특정 테스트 카드는 단순한 기술 도구를 넘어, 방송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그니처 이미지로도 발전했다. 지금은 화려한 스테이션 id 영상이 나가지만 TV 방송 초기에는 정지 화면 정도만 낼 수 있어 테스트 패턴이 인기를 끌었다.
🔹️ RCA 인디언 헤드(Indian Head) 패턴
1939년에 도입되어 20년 넘게 사용된 이 이미지는 초기 미국 TV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Retro TV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 CBS 불스아이(Bullseye) 패턴
동심원, 해상도 웨지, 격자무늬 등으로 구성되어, 포커스와 선명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WJZ-TV(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카드
방송국의 지역 정체성을 살린 이 테스트 카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시청자와 방송국 사이의 정서적 연결 고리가 되었다.
🔹️ BBC의 테스트 카드 F
1967년에 BBC가 도입한 Test Card F는 BBC TV 엔지니어인 조지 허시의 여섯 살 딸 캐럴 허시(Carol Hersee)가 버블스(Bubbles)라는 광대 인형과 틱택토(Tic Tac Toe) 게임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이미지는 1967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동안 수천 시간 동안 방송되며, 영국 TV 역사상 가장 많이 방송된 이미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방송 시작 전 화면조정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컬러 바 또는 테스트 패턴을 먼저 띄우고 그날의 방송 순서를 내보내고 애국가에 이어 정규 방송을 시작하곤 했다.
🌐 24시간 방송의 시대, 사라진 테스트 카드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의 방송은 점차 24시간 편성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쇼, 영화 재방송, 종교 방송 등으로 시간대를 채우며, 테스트 패턴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지금은 방송이 중단되어도 컬러 바 대신 디지털 오류 메시지나 로고 스크린이 등장한다.
현재 대부분의 방송국은 Digital TV 신호에 테스트패턴 등 측정을 위한 신호를 삽입해 방송 신호 측정 등에 사용하고 있다.
비록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테스트 카드는 여전히 대중문화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미드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의 셸던 쿠퍼(Sheldon Cooper)는 SMPTE 컬러 바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즐겨 입은 걸로 알려졌다. 그 외에 커피 머그잔, 스마트폰 케이스, 벽지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테스트 카드는 이제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 선택의 부담 없이 TV가 꺼지던 때까지 보곤 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적 상징이 되었다.
🔕 정적이 그리운 이유
지금은 수많은 OTT 서비스와 채널이 넘쳐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정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서도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혹은 국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심야 방송이 없었고, 사람들은 AFKN이나 라디오에 의존해 밤을 지새우곤 했다. 종일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는 주한미군 방송(AFKN)과 라디오만이 밤을 지새우던 사람들의 유일한 벗이었다.
지금은 넘쳐나는 채널과 서비스에 밀려 AFKN은 유선으로 서비스 중이고, 라디오도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정적의 순간은 오히려 과거의 TV가 가진 물리적 한계이자, 감성적 여백을 상징한다.
때로는 방송이 끝나고 멈춰 있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방송 신호는 정파 시간에 송출되는 Test 패턴으로 정확하게 측정되고 교정되지만, 방송 내용은 점점 더 공평·공정이란 기준이 안 지켜지고 있다. 방송 내용을 측정할 테스트 패턴이 필요한 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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