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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소파에서 세상을 바꾸게 만든~ 무선 리모컨을 발명한 무명의 천재

 

우리는 리모컨 없이는 TV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조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블루투스를 이용한 제어도 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리모컨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놀랍게도 최초의 발명자는 유진 폴리(Eugene Polley)라는 대학 학위도 없던 평범한 시카고 출신의 청년 기술자였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작은 발명품 하나가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 리모컨의 탄생
1955년에 제니스 일렉트로닉스(Zenith Electronics)에서 일하던 유진 폴리는 세계 최초의 무선 TV 리모컨 Flash-Matic을 발명했다.
제니스는 1955년 6월 13일 자 보도자료를 통해 플래시 매틱이 TV 시청 방식을 바꿀 혁신이라고 발표했다.이 리모컨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올 법한 광선 권총 모양이었다. 권총형 리모컨으로 TV 네 귀퉁이에 설치된 센서에 빛을 쏘아 작동시켰다.그 이전에는 TV 채널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가 일어나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눌러야 했다.

보통 그 임무는 집안의 막내 몫이었다.

유진 폴리 덕에 아이들은 채널 변경 노역??에서 해방되었다.

플래시매틱 광고

어른들은  광고가 나올 때마다 쉽게 다른 채널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리모컨 없는 TV 시청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초기 판매시절의 플래시매틱과 포장

🧠 학위 없는 발명가, 보상은 단 1$
유진 폴리는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했지만 재정 문제로 중퇴했고,  독학으로 기계 기술을 깨친 엔지니어였다. 1935년에 제니스에 창고 재고관리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특유의 기술 감각과 끈기로 발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유진 폴리는 47년 동안 제니스에서 일하면서 1,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주로  레이더, 야간 투시경, 근접 신관 등 군수 개발에도 참여했다. 유진 폴리는 모두 18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Flash-Matic 리모컨의 권리는 회사에 있었고, 폴리가 받은 보상은 고작?? 1달러였다.

유진 폴리가 회사로부터 받은 1달러 수표

미국의 한물가 사이트 정보에서 1930년대 중반에 1달러로 Campbell's 수프 16캔을 살 수 있다고 나와있는 걸 보니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6,000원×16= 96,000원 정도이니 리모컨 최초 발명자에 대한 포상치고는 너무 박했던 것 같다.

1930년대 중반의 1달러의 구매 가치 [http://www.visualcapitalist.com/buying-power-us-dollar-century/]

🔊 경쟁자 애들러의 등장과 불편한 진실
Flash-Matic으로 재미를 본 제니스는 1년 후 같은 제니스의 박사 엔지니어인 로버트 애들러(Robert Adler | 1913~2007)가 만든 초음파 제어 방식의 리모컨 Space Command를 출시했다.

Space Command 리모컨과 자신의 발명품을 들고 사진을 찍은 말년의 Robert Adler

이 제품은 빛 대신 초음파로 TV를 제어했다. 빛으로 작동하는 Flash-Matic과 달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나 실내 전등 빛에 방해를 받지 않아 더 정확하게 작동했다. 또한 다양한 주파수를 사용해 채널 변경 외에  켜기/끄기, 채널, 소리 등 다양한 기능을 제어할 수 있었다. 제니스는 간판이 번듯한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 공학 박사 출신인 애들러를 슬금슬금 TV 리모컨의 발명가로 내세우기 시작했고, 자수성가형 현장형 기술자인 유진 폴리는 그 그늘 속에 가려지고 말았다.

초음파 방식 무선 리모컨 Space Command 판매 광고

🏆 뒤늦은 인정
1980년대 들어 외부 빛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적외선 리모컨이 대세가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다시 유진 폴리가 고안  최초 방식으로 유턴했다.  그가 만든 빛 기반 조작 방식은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애들러와 함께 에미상(Emmy Awards) 기술 부문 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2000년 11월 볼티모어 선(Baltimore Sun) 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리모컨은 변기보다 더 많이 쓰인다. 고 유진 폴리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은 진실이었다

에미상을 수상한 유진 폴리와 시상식에서 각자의 발명품을 들고 사이좋게 기념 촬영을 한 로버트 애들러와 폴리

🧡 한 사람의 상상력이 바꾼 세상
유진 폴리는 2012년에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까지도 자신이 남긴 유산에 자부심을 가졌다.
내 인생이 낭비된 건 아니었다. 아마도 인류를 위해 뭔가 했을 거야. 변기를 발명한 사람처럼. 끝까지 뼈 있는 유머를 던졌다.
그의 삶은 조용했지만, 그의 발명은 여전히 우리 손안에 있다. 지금도 우리는 리모컨 하나로 유진 폴리가 처음으로 상상했던 그 미래 속에서 살고 있다.

최초의 리모컨과 최신 리모컨을 들고 있는 말년의 유진 폴리

기술 혁신은 거창한 연구소나 박사 학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발명가나 기술자 한 명의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고 야 말겠다는 집요한 상상력과 끊임없는 시도에서 나온다. 유진 폴리의 일생이 바로 그 증거이다.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자부심은 잃지 않는 모습..
이렇게 수없이 혁신 제품을 내놓았던 제니스도 1999년에 LG전자에 인수되면서 지금은 유진 폴리 같은 엔지니어들이 밤새우면서 만들어낸 특허만 남아있다.